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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읽기

존 앳킨슨 그림쇼의 겨울달

꿈꾸는 한여사 2023. 1. 5.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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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Wintry Moon | 존 앳킨슨 그림쇼(John Atkinson Grimshaw) | 1886

 

   스산하고 축축한 한기가 느껴지는 거리의 밤 풍경입니다. 인적 없는 거리에 마차한대가 외롭게 지나가고 나무들은 잎하나 없이 메마른 자태를 드러내며 늘어서 있습니다.  밤거리인데 어둡지 않은 이유가 하늘에 높이 뜬 달빛이 대낮처럼 밝기 때문일 겁니다. 몽환적이며 고독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그림은 그림쇼의 '겨울 달'입니다.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차가운 겨울대기에 높이 뜬 달이 이 그림의 매력적인 주인공이어선지  자칫 귀곡산장 같은 주변풍경들이 달빛에 많이 순화되어 부드럽게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거리에 가로등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즉 인위적인 인공조명이 없어 자연의 달빛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차가운 바닥과 마른 나뭇가지만 있었으면 스산하고 서늘해 보이는 쓸쓸한 풍경이 되었겠지만 저 멀리 집의 빛과 앞쪽 저택의 노란 불빛들을 표현해 따스함을 공존시켰습니다. 정신없이 시끄럽게 돌아가는 날에 많이 지치는 날, 이 그림은 조용한 사색과 깊이 있는 휴식을 전달해 줍니다. 마음이 차분이 가라앉고, 냉정히 현실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되는 이런 힘이 그림의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영국의 밤거리를  묘사하는데 탁월했던 그림쇼의 그림들 중 이 그림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다른 그림들보다 은은히 구름 낀 하늘에 떠있는 달빛이 주는 조용한 위안과 고즈넉한 거리풍경이 운치 있게 잘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겨울밤공기가 숨 쉴 때마다 폐를 찌르며 스모그로 축축한 안개 같은 습기가 거리에 자욱이 깔리는 거리를 홀로 걷는 상상을 해봅니다. 무슨 생각을 하며 걷든 그다지 유쾌하거나 즐거운 생각은 아닐 겁니다. 환경이  감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분위기에 많이 휩쓸리는 편이라 이런 쓸쓸한 겨울 거리를 걸으면  약간은 침울해하거나 외로운 감정이 스치면서 지나가고 풀리지 않는, 아니면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마음이 무겁거나 복잡할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이라서 더 쓸쓸하고 적막한 마음상태가 되겠지요. 어디선가 멀리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리고 습기를 머금은 돌바닥에 마차가 지나가며 남기는 바퀴소리가 왠지 귀에 거슬리기도 하겠지만 정면과 땅만 보며 걷다 하늘을 보니 구름사이로 보이는 밝은 달빛에 마음이 어쩐지 고요해집니다. 동요되고 어지럽던 마음상태가 정돈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차분히 모색하게 됩니다. 달은 예부터 소원을 빌면 이루어주는 힘이 있다고 하지요. 현실세계에서 마음이 힘들 때 머리가 복잡할 때 이 그림을 가끔씩 보며 달을 자동적으로 오래 쳐다보게 되는데 실제로 마음에 차분한 위안을 자주 얻곤 합니다. 

 

 

존 앳킨슨 그림쇼 (John  Atkinson Grimshaw 1836~1893)

 영국 리즈 출신의 19세기 화가입니다. 그는 재능은 있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다가 25세 때 일하던 철도회사에서 나와 그림 그리기에 전념해 점차 큰 성공을 이룬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부자 화가입니다. 그의 애칭 '달빛 화가'라고 불릴 정도로 달빛에 비친 풍경묘사에 독보적이고 탁월한 미적 감각이 있었습니다. 19세기 당시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끈 도시들의 밤 야경과 부둣가의 모습을 안개와, 축축한 습기가 느껴지는 밤공기, 구름 낀 하늘의 달빛을 절묘하게 혼합해 몽환적이고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그렸습니다.  고독과 적막함이 느껴지는 밤풍경이지만,  따스한 노란불빛을 사용해 따뜻함과 고독함이 함께 공존하는 그림쇼의 그림들은 특히 그 당시 영국중산층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추측건대 산업혁명을 이끌고 자수성가하여 어느 정도 문화생활을 누릴 정도의 수준이 되는 사람들은  일터에서 쉼 없이 일하다 고단한 

하루를 끝마치고 휴식을 취할 때 그림쇼의  몽환적인 달빛이 아름다운 그림에 적잖은 위로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의 그림은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아름답고 몽환적으로 가공된 밤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 당시 영국의 더럽고 냄새나는 뒷골목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부드럽게 은은한 색조를  뭉개듯 화면에 스며들듯이 퍼뜨려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시대상에 맞지 않게 감상적이고 낭만적으로 그렸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예술은 예술이다,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유미주의를 추구한 그림쇼의 그림들은 충분히 아름답고 낭만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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