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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는 병마에 오랫동안 시달려 온몸의 극심한 고통을 껴안은채 삶을 마감했다. 그 친구가 평소에 늘 했던 말은 나는 죽음뒤의 내 존재를 믿는다. 그러나 그 어떤 생물체로도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모든 생명체는 아픔의 고통을 느끼고 소멸하기 때문에, 나는 향기나는 바람이 되어 가고 싶은 온 장소를 부드럽고 자유롭게 흘러흘러 떠다닐 것이라고 했다. 육체의 고통을 너무나 벗어나고 싶어했던 친구였기에 너는 원하는대로 꼭 그렇게 되리라고 만날때마다 늘 얘기해주고 진심으로 믿어주었다. 본인 못지않게 고통에 힘들어한 그의 모습을 보는 것도 늘 마음이 아팠던 나였기에 어쩌면 내가 그렇게 될거라고 더 확실히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는 몸에서 나는 고통의 냄새를 늘 지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매일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000향수를 온몸에 도포하듯이 뿌려댔다. 그 향수는 신선한 풀과 들꽃의 싱그러운 향으로 유명했는데 본인이 아프기 전에도 가장 좋아한 향수였기에 아프고 나서는 심할 정도로 구석구석에 뿌려댔었다. 그래서 그를 병문안가면 온몸에서 진동하는 그 향수에 머리가 아플만도 한데, 신기하게도 나나 그나 인위적인 향수냄새가 아닌 마치 신선한 꽃다발에 파묻힌듯 기분좋고 편안한 향에 마치 그 향수가 그만의 고유한 체취인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했었다. 그가 드디어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난 날, 그리고 며칠뒤 처음 납골당에 찾아가며 그가 아끼고 사랑했던 향수를 대용량으로 사가지고 가서 추모하면서 매년 사다주겠노라 약속을 하고 돌아왔다. 일상에 파묻혀 정신없는 날들이 지나가고 어느 따뜻한 봄날 작업을 하다 나른한 봄기운에 살짝 졸았었는데 순간 너무나 익숙한 그 향수 냄새가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함께 내 온몸을 편안하게 감싸고 지나갔다. 뭐지? 너무나 놀라 꿈을 꾼것인가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 열려진 창문 밖을 살펴보고 주변을 온통 둘러보았지만, 그 향수냄새가 풍길 어떠한 상황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또한번 은은하게 퍼지는 그 향수와 기분좋은 바람이 내 앞머리를 살짝 들썩이며 스쳐지나갔고, 이후로도 내가 고단한 일상에 찌들어 피곤해 할 때마다 밖이건 집안이건, 장소 불문하고 기분좋은 산들바람이 내 몸을 살짝 훓고 지나가며 그 향수의 은은한 잔향이 길게 여운을 남긴채 사라지곤 했다. 계속되는 이 신비한 경험은 그 친구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동시에 잊지말고 기억해 달라는 메세지 자체이며 ,그래서 그가 그토록 원했던 향기나는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떠다닌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1년 후 추모일에 다시 찾은 그의 납골당에서 한참을 그를 생각하며 울다 다시 사온 대용량 그 향수를 작년에 갔다놓은 향수 옆에 놓기 위해 작년 향수를 얼핏 보았을 때였다. 나는 겉상자는 협소한 납골함 공간을 생각해서 버리고 본품만 놓으면서 분명 본향수병 개봉씰은 뜯지 않은 상태로 놓았었다. 그래서 누군가 인위적으로 뜯으면 알아차릴 수 있는데, 개봉씰은 전혀 뜯기지 않은 새것 그대로인 채 향수만 바닥에서 1미리정도만 남겨놓고 거의 비어있었다. 눈을 아무리 씻고 자세히 들고 여기저기 보아도 누군가 아는 지인이 추모하면서 불손한 마음 플러스 호기심에뿌려본다고 가정해도 딴 흔적과 사용흔적이 분명 있어야 되는데 새상품 그대로 향수만 줄어들다니, 이건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아무 의심없이 범인?은 이 친구라고 확신할 수 밖에 없었다. 그토록 원했던 자유로운 바람이 되어 너무나 좋아했던 본인의 시그너처 체취를 사용했구나,라고. 어떻게 매년 추모일마다 내가 사올거라는 약속을 믿고 협소한 공간을 생각해 적절히 자리교체할? 향수를 사오게 하는 센스?를 보여주는지, 나는 또한번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고단하고 피곤할때마다 기분좋게 불어와준 그 친구의 위로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사후세계도 믿는 만큼,내 눈앞에 나타나 보일 거라는 생각하에 글짓기를 해봤다. 사후세계를 깊게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죽음뒤에 우리의 존재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적은 가끔 있다. 이번 질문을 통해 강한 믿음은 그 세계를 확신할 충분한 증거물들을 곳곳에 남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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