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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 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명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 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주십사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아멘. -작자 미상(17세기 수녀)-
* 보통 성직자들의 기도문을 보면 엄숙하거나 죄를 뉘우치는 아니면, 자신을 신께 바치는 거룩한 내용들이 연상되는데, 이 기도문은 너무나 지극히 인간다운 기도문이 아닌가 싶다. 결국 지금 현 시대에 대입해보면 꼰대 어르신?이 되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 아닐까? 본인의 삶을 오직 신께 한평생 바치는 성직자의 삶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지 이 기도문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늙어가고 힘에 부쳐 모든 신체적, 정신적 상태의 노쇠함에 따른 결과를 굉장히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너무나 와닿는다. 종교를 떠나 모든 늙어가는 삶에 존중과 위로를... 또한 운동과 정신건강을 부지런히 챙겨야겠다는 마음가짐도 다시한번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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